한니발 라이징 감상문

덧붙임 - 대놓고 스포, 영화를 본 사람에 한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보신분도 피하세요. 소설이 따로 없음.
            포스팅이 어울리지 않아서 그림과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네이버 영화의 별점이 낮아서 좀 놀랐다. 억지설정에다 원작내용을 그대로 따왔다는게 문제가 된 것 같은데 책을 읽지 않은 나는 이 점에 관해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 원작을 읽지 않았는데 원작과 영화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다만 내가 짚어보고 싶은 부분은 렉터를 화면상 그대로 동생의 복수에 집착하는 감성적인 청소년으로 봐도 되나하는 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한니발 라이징의 감독은 흥행률보다 영화의 구성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렉터의 과도한 집착때문이었다.

 난 미샤의 죽음이 식인행위를 이끌어낸 트라우마가 아니라 한니발의 본성을 깨우치게한 시초점이라고 생각한다.
미샤의 복수를 핑계삼아서 그 당시 자신의 식인행위를 정당화하고 그루타스 일행을 처치하며 정당화한 식인행위를 행했다고 생각했다.

 미샤는 죽음의 끝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한 마지막 가족이고 핏줄이며 사랑하기 그지없는 여동생이었다. 한니발은 미샤의 비명소리를 잊지못하고 또 자신이 미샤를 먹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충격으로 한니발는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이들을 찾아내어 죽이고 식인행위에 집착하다 살인귀가 된다-라고 보이기도 하겠지만 마지막에 그가 미샤를 먹어치우는 것을 본 목격자를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의 행실에선 카니발에 의해 발생했다기엔 억지스러운 모습이 간간히 느껴진다. 영화에서 그려진, 내가 만난 그는 치밀하다못해 비열한 인간상이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자신이 미샤를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생각한다고 느끼도록 시간과 공을 들여 일을 해치운 것이다. 영상화면이 한니발 렉터를 가린다. 미샤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 담긴 진실이었지만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고 본다. 사람이 이 지경까지 가면 일단 상식선에서 치워지는 것이다.

 어릴 적 한니발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교육 속엔 세상의 상식이란 것도 있을 것이고 그간 접해왔던 주위의 일반적인 반응이나 생각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었을 것이다. 카니발은 자신이 사는 지역근방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었지만 그것을 옳다해주는 어른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그는 사람을 먹는다는 옳지 않은 일을 했음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자신에게 놀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을 먹고 전쟁을 겪고 죽었다살아났는데도 아무일도 없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의 충격일 것이다. 좀 과하게 나가보면 미샤를 지켜준 것 역시 그래야한다는 생각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잃고 싶지 않은 한조각의 인간성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한니발은 그정도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복수라는 이름의 즐거운 사냥을 한다.

 For misha 철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숙모도 이용당했다. 사랑을 나눈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의 공통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를 보호해줄 대상이었던 것이다. 내가 감성적인 청소년이었다면 숙모와 키스하는 일따위 없을 거다. 이정도 상식선의 도덕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를 보이는 그대로의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감성적인 것은 한니발이 아닌 주변의 인물들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 그를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죽음 앞에서의 비굴하고 절망적인 모습이 한니발을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다. 포필 경감이 읊조리는 '1944년 겨울 한니발은 눈 위에서 죽었어', '괴물' 발언은 어디까지나 포필 경감이라는 아주 우리의 상식선인 사람의 시선에서의 판단이다. 진짜 한니발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본색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발현됐다는 것이고 괴물은 괴물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

 써놓고보니 덧붙임글이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을 인간쓰레기로 만들어놨다.

 영화를 봤더니 책이 읽고 싶다. 영화를 통해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지언데 시간적 한계가 비교적 자유로운 책에서는 얼마나 더 대단한 느낌을 받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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